뿌리알기
ㆍ작성자 안성규
ㆍ작성일 2017-01-20 (금)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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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몽윤(安夢尹)-1派17世참판공파-순양군(順陽君)진무공신(振武功臣)
안몽윤(安夢尹)

성명(姓名)

 안몽윤(安夢尹)

본관(本貫)

 순흥(順興)

시대(時代)

1571(선조 4)∼1650(효종 1)

자(字)

상경(商卿)

호(號)

 

이력(履歷)

안몽윤(安夢尹)  1571(선조 4)∼1650(효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세복(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계(通政階)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년 첨지중추부사, 1622년 자산군수가 되어 조방장(助防將)을 겸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수령들이 거의 쫓겨났으나 그만은 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전부우협장(前部右協將)으로 군량보급에 힘쓰고 서울 안현(鞍峴)싸움에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3등으로 순양군(順陽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숙천부사, 1626년 부총관에 이어 김해부사·중화부사·전라수사 등을 거쳐 1643년 경상우병사가 되고, 1646년 자헌계(資憲階)에 올라 도총관을 겸하였다.
1648년 포도대장, 이듬해에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李章熙〉
 
 
안몽윤(安夢尹) 순흥인 참판공파 공주소종
17世  안몽윤(安夢尹)   *꿈 몽, 다스릴 윤.맏 윤*
할아버님은 자(字)가 상경(商卿)이시고 1571년 즉 선조(宣祖) 4년 신미생(辛未生)이시다.
1592년 선조25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왜병(倭兵)의 대거침공으로 국내가 전쟁터로 변하는 난리(亂離)속에 할아버 님은 음보(蔭補)로 자원출정(出征) 참전(參戰)하여 많은 공을 세우셨다. 1594년에 무과(武科)에 등과(登科)하셔서 자산군수(玆山郡守) 선전관(宣傳官)을 지내신 다음 남포현감(濫浦縣監), 옥구현감 등을 역임하셨다. 1624년 인조(仁祖) 2년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원수(元帥) 장만(張晩)의 전부우협장(前部右協將)으로 안현(鞍峴)싸움에 출전하여 대공을 세우고 갈성분위(竭誠奮威) 진무공신(振武功臣)에  녹훈(錄勳)되셨으며 순양군(順陽君)에 봉군(封君)되셨다. 그 후 안동부사(安東府使) 전라우도(全羅右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겸 오위 도총부 도총관(五衛 都摠部 都摠管) 등등 요직을 역임하셨다. 1650년 경인 9월 3일 향수(享壽) 80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의정(右議政) 순양부원군(順陽府院君)을 추증(追贈) 받으셨다.
할아버님께서는 공신록(功臣錄)을 받으실 때 조정(朝廷)에서 그려받으신 영정(影幀)이 전해지고 있는 바 이 영정은 할아버님의 10대손인 공주군 이인면 오곡리(梧谷里=오실) 안병년(安炳秊 : 1979년 별세)댁에 봉안(奉安)보존(保存)하고 있고 또 위에 표시한 영정은 광양 여재사(如在祠)에 봉향(奉享) 하고있다. 슬하에 6남매(장자 응창(應昌), 차자 응망(應望), 응발(應發), 응양(應亮), 응길(應吉), 응운(應運))과 5녀를 두셨다.

묘(墓)

용인 선영국내(先塋局內) 재실동(齋室洞) 동록(東麓) 간좌(艮坐) 지원(之原)에 합분(合墳)으로 모셔있다. 매년 음10월 7일 세사를 올린다.

부(父)

안세복(安世復)
  16世  안세복(安世復) *인간 세, 돌아올 복*
자(字)가 중회(仲恢)이시다. 1541년 즉 종중 36년 신축(辛丑)생이시다1570년 생원시(生員試)에 급제(及第)하셔서 풍저창(豊儲倉) 직장(直長)에 보직(補職) 되셨다.
1614년 향수(享壽) 74세에 별세하였으며 증 보조공신(贈  補祚功臣), 좌찬성(左贊成), 그리고 순계군(順溪君)으로 봉군(封君)을 받으셨다. 슬하에 4남(몽익(夢益), 몽윤(夢尹), 몽척(夢陟), 몽상(夢尙))과 3녀를 두셨다. 매년 음10월7일 세향을 올린다.

모(母)

부인은 증 정부인(贈 貞夫人) 광주김씨(光州金氏)이시고 조부가 부제학(副提學),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추증(追贈) 받으신 문의공(文懿公) 자암(自菴) 김구(金絿)공이 시고 선친이 진사장원(進士壯元) 김조(金釣)공이시다.

배(配)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한산이씨(韓山李氏)이시고 그 선친이 군수를 지내신 이덕순(李德淳)공 이시다.

자(子)

안응창(安應昌)

자(子)

안응망(安應望)

자(子)

안응발(安應發)

자(子)

안응양(安應亮)
18世 안응양(安應亮) *응할 응, 밝을 양*
1614년 즉 광해군(光海君) 6년 갑인생(甲寅生)이시다.
소시(少時) 호문수학(好文修學)하고 통덕랑(通德郞=정5품)을 지내셨다.
1681년 즉 숙종(肅宗) 신유년(辛酉年)에 향년(享年) 68세로 세상(世上)을 떠나셨다.
배(配) 부인(夫人)은 공인(恭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시고 선친이 선조(宣祖) 제5자(第五子) 신성군후(信城君後)인 직장(直長) 이정립공(李正立)이시다

자(子)

안응길(安應吉)

자(子)

안응운(安應運)

녀(女)

 5 녀(女)

형제(兄弟)

형(兄) 안몽익(安夢益)

형제(兄弟)

제(弟) 안몽척(安夢陟)

형제(兄弟)

제(弟) 안몽상(安夢尙)

형제(兄弟)

 3 녀(女)

문헌(文獻)

1. [벌열(閥閱)]
●공신(功臣): 안몽윤(安夢尹) (인조조 이괄란토평3등공신(李适亂討平3等功臣))
 
2. 안몽윤(安夢尹) 본(本) 순흥(順興)
진양속지 제1권/임관/병사(兵使)    
○ 이 아래에 실은 여러 인물은 명안(名案)을 잃었으므로 얻은 대로 따라 기록하니 앞과 뒤가 자세하지 못하다.
○ 안몽윤(安夢尹)ㆍ조계태(趙啓泰)ㆍ최진한(崔鎭漢)ㆍ김정우(金廷遇)ㆍ이연필(李延弼)ㆍ윤득규(尹得逵)ㆍ전대현(田大顯)ㆍ오재휘(吳載徽)ㆍ이건수(李健秀)ㆍ백사은(白師誾)ㆍ이홍운(李弘運)ㆍ홍인묵(洪仁默)ㆍ안숙(安?)은 『병학지남(兵學指南)』을 간행했다.
 
3. 교남지 인동군 관안(官案) (관리 명부)-현감 부사 조선(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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