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알기
ㆍ작성자 안성규
ㆍ작성일 2017-01-20 (금)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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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창(安應昌)-1派18世참판공파-순원군(順原君)|
안응창(安應昌)-1派18世참판공파-순원군(順原君)|순흥안씨 자료집
광덕산 | 등급변경 | 조회 0 |추천 0 |2017.01.20. 19:43 http://cafe.daum.net/p4445/STfA/75 
안응창(安應昌)-1派18世참판공파-순원군(順原君)漢城右尹 善山都護府使 의성현령(義城縣令) 백암문집(柏巖文集)著| 참판공파(參判公派)從信
바른정보(안정의) | 조회 193 |추천 0 | 2008.12.23. 17:56 http://cafe.daum.net/ahnjustice/OKFE/126  //

// 안응창(安應昌)
1派18世-참판공파
 
순원군(順原君) 漢城府右尹 善山都護府使 義城縣令 백암문집(柏巖文集)著
 
 


1593(선조26)∼1673(현종 14).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우졸재(愚拙齋)흥숙(興叔), 호는 백암(柏巖)

아버지는 진무공신(振武功臣)인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인이다.
음보(蔭補)로 부사(府使)를 하였고 천거로 봉림대군(鳳林大君)사부(師傅)가 되었다.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에 추증되었으며 순원군(順原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추원록(追遠錄)》, 《청교묵담(靑郊墨談)》이 있다.
 
 
1603(선조 36)∼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흥숙(興叔), 호는 백암(柏巖).
안향(安珦)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숭정대부(崇政大夫) 증우의정(贈右議政) 안몽윤(安夢尹)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덕순(德淳)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제수(際授)되어 청나라 심양(瀋陽)에서 불모로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을 1640∼1643년까지 3년 동안 모시다가 소현세자(昭顯世子)·봉림대군 일행과 같이 환국하였다.
그 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부(傅)가 되었고, 와서별제(瓦署別提)·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1644년 김화현감(金化縣監)·1655년(효종 6) 의성현령(義城縣令)에 각각 임명되었다.
그 뒤 낙향(落鄕)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저서로는 ≪백암문집≫ 5권이 있다.
 
 
[안응창(安應昌)의 정치 업적] 안공(安公)의 자는 흥숙(興叔)이고 호는 우졸재(愚拙齋)이며 만력 계사년(1593, 선조 26)에 태어났다.
인조(仁祖) 때의 진무공신(振武功臣)인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여헌(旅軒) 장선생(張先生)에게 글을 배웠으며, 천거로 대군(大君)의 사부(師傳)에 제수되었으며,
여러 군읍(郡邑)을 맡아 다스렸다. 내가 공이 지은 《청교묵담(靑郊墨談)》을 보았는데, 말하기를,

“나의 성품이 소루하고 오활하여 그간 장리(長吏)를 지냈으나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고 또 명예를 바라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백성을 이롭게 하고 안정시키는 도리에만 힘썼다. 낭천(狼川)과 김화(金化)를 다스릴 때는 얻은 미포(米布)를 모아 민역(民役)에 보태어 썼으며, 의성(義城)을 다스릴 때는 크게 보민청(保民廳)을 설치하고 단 얼마라도 소득이 있으면 여기에 저축하여 1천 5백 석의 곡식을 사들이고 또 40동(同)의 면포(綿布)를 마련해서, 매년의 쇄마(刷馬) 및 대동청(大同廳)에 응역(應役)하는 대소(大小) 인리(人吏)의 지공(支供)과 잡역(雜役)에 썼다. 예천(醴泉)을 맡아 다스릴 때는 또 의창(義倉)을 설치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밑천으로 삼았으며, 또 익하고(益下庫)를 설치하여 공사(公私)간의 수응(酬應)에 드는 경비를 민간에 부담시키지 않았다. 이리하여 관(官)에 있을 때는 비록 찬양하는 소리가 없었지만, 떠나온 뒤에 더러 사실보다 과장된 기림이 많았다.
그리고 고을에 나가 있을 때에 반드시 먼저 충효(忠孝)와 정렬(貞烈)과 유선(儒先)의 묘에 제사하였으며, 가난하여 혼인이나 장사를 치르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와서 이루어 주었고, 의탁할 곳이 없는 노인에게 식물(食物)을 지급했으며, 향약(鄕約)의 법을 세우고 매년 기로연(耆老宴)을 열어서 즐겁게 해 주었다…….”
하였다.
-순암선생문집 제13권-잡저(雜著)-상헌수필 하(橡軒隨筆下)-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안응창(安應昌)
 
1603(선조 36)∼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흥숙(興叔), 호는 백암(柏巖).
안향(安珦)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숭정대부(崇政大夫) 증우의정(贈右議政) 안몽윤(安夢尹)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덕순(德淳)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제수(際授)되어 청나라 심양(瀋陽)에서 불모로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을 1640∼1643년까지 3년 동안 모시다가 소현세자(昭顯世子)·봉림대군 일행과 같이 환국하였다.
그 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부(傅)가 되었고, 와서별제(瓦署別提)·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1644년 김화현감(金化縣監)·1655년(효종 6) 의성현령(義城縣令)에 각각 임명되었다.
그 뒤 낙향(落鄕)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저서로는 ≪백암문집≫ 5권이 있다.
≪참고문헌≫ 柏巖文集(安應昌)

 
 
안세복(安世復)좌찬성(左贊成)으로 순계부원군(順溪府院君). 그의 손(孫) 안몽윤(安夢尹)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순양부원군(順陽府院君)이며, 증손(曾孫) 안응창(安應昌)효종(孝宗)의 사부 순원부원군(順原府院君)으로 3대 봉군(封君)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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