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알기
ㆍ작성자 안성규
ㆍ작성일 2017-01-20 (금)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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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도(安宗道)派15世참판공파-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안종도(安宗道)
 
【성 명】 안종도(安宗道)
【생몰년】 1522(중종 17)∼1603(선조 36)
【본 관】 순흥(順興) 안(安)
【자·호】 관부(貫夫), 세한재(歲寒齋)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22(중종 17)∼1603(선조 36).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관부(貫夫), 호는 세한재(歲寒齋)이다.

좌승지에 추증된 안광수(安光邈)安光의 손자이며,
익위사(翊衛司) 익위(翊衛)로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된 안경률(安景嵂)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명종 1년(154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사관(史館)에 들어가 봉교(奉敎) 등을 지냈다.
1557년 부상(父喪)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고, 시강원 설서(說書)를 거쳐 형조 · 예조 · 병조 · 이조 좌랑 정랑을 거쳤고, 사헌부 정언(正言) ·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그뒤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 교리(校理) ·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 · 사옹원(司饔院正) · 사재감 정(司宰監正)을 지내고, 1566년 배천(白川) 군수가 되어 치적을 남겼으므로 선정비가 세워졌다.
1572년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길주목사(吉州牧使)가 되고 1574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장례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가 되었다.
1580년부터 1589년까지 경주 · 안동 · 양주(楊州) 등지의 수령충청도관찰사를 거쳐 형조참의가 되고 이천부사(利川府使)로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의병모집하여 왜적과 투쟁하였다.
이감(李戡) · 이중경(李重慶) 등과 동향(同鄕)친구로 권신 이양(李樑)의 비호 아래 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서기 1532년 (明宗 壬申)충생, 호는 세한재(歲寒濟). 자는 관부(貫夫), 관향은 순흥(順興),
참판공파(參判公派) 거유 문성공(文成公) 회헌(晦軒) 안유(安裕)의 12대손으로 부(父)는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안경률(安景嵂)이며, 그의 자(子) 안세복(安世復)은 좌찬성(左贊成)으로 순계부원군(順溪府院君). 그의 손(孫) 안몽윤(安夢尹)은 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순양부원군(順陽府院君)이며, 증손(曾孫) 안응창(安應昌)은 효종(孝宗)의 사부 순원부원군(順原府院君)으로 3대 봉군(封君)을 받았다.

관력은 병오년에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대과(大科)에 급제, 서기 1551년에 경주부판관, 1561년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을 거쳐 충청관찰사, 이조판서, 성균관대재학 등을 역임하고, 79세를 일기로 졸하였으며, 재임중 혹새무민하는 무속행위를 금하게 하고 청렴한 선비의 도리를 다하여 청백리에 품하기도 하였다.

진주 목사때 선정으로 부민들이 송덕비를 세웠고, 진주도통사에 배향되었으며,
묘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좌변에 있다.
 
 
 
안종도 [, 1522~1600]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이조정랑·장령·성균관직강·우통례·길주목사 등을 두루 역임하고, 1578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 이천부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싸웠다.
본관은 순흥()이다. 자는 관부()이고, 호는 세한재()이다. 익위사() 익위()로 이조참판에 추증된 경률(嵂)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57년(명종 12) 검열에 제수되었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였다.
1562년(명종 17)  사간원 정언에 오른 뒤 부수찬·이조좌랑·이조정랑·장령·성균관직강·우통례·길주목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78년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명나라 조정의 상황을 장계로 올렸다. 이후 경주·안동·양주() 등지의 수령을 거쳐 1585년(선조 18)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이천부사(使)로 재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싸웠다. 사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이 추증되었다.
 
 
 
예문관대제학 안종도(安宗道)

명종 1년(154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사관(史館)에 들어가 봉교(奉敎) 등을 지냈다. 1557년 부상(父喪)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고, 시강원 설서(說書)를 거쳐 형조 · 예조 · 병조 · 이조의 좌랑과 정랑을 거쳤고, 사헌부 정언(正言) ·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그뒤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 교리(校理) · 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 · 사옹원 정(司饔院正) · 사재감 정(司宰監正)을 지내고, 1566년 배천(白川) 군수가 되어 치적을 남겼으므로 선정비가 세워졌다. 1572년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길주 목사(吉州牧使)가 되고 1574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장례원 판결사(掌隸院判決事)가 되었다. 1580년부터 1589년까지 경주 · 안동 · 양주(楊州) 등지의 수령과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형조 참의가 되고 이천 부사(利川府使)로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투쟁하였다.

사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대제학을 추증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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