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순흥부 북쪽 백운등에 문성공을 모신 사당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른바 소수서원이 이것이다. 또한 고을 남쪽에 안씨의 옛터가 있는데 사당에서7리쯤 되며 그 곁에 조그만 연못이 있으니 이를 세연지(洗硯池)라 하여 옛 사적으로 삼아 오고 있으며 지금도 사람들이 이곳을 이야기하고 경의를 표하여 고사로 전해 오고 있다. 문성공의 아버님 태사 부(孚)와 태사공의 할아버님 신호위상호군 자미(子美) 두 선조가 이곳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안씨의 창성은 실로 상호군이 덕을 쌓은 데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후세에 사당을 지어 시조로 삼았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여기에 제단을 쌓고 제전을 마련하고 매년 10친 상일(上日)에 태사공과 배향하여 제사 드리며, 또한 동쪽으로 1리쯤에 안씨 사현정(四賢井)이 있는데 중종조에 신재 주세붕이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기를 “보첩을 살펴보면 삼한의 훌륭한 씨족으로 많은 성씨 가운데는 고귀한 집안이 한둘이 아니다. 큰 어진이의 씨족으로 명인과 달관이 유달리 많이 배출되어 전에 없이 특히 번성한 성씨는 안씨(安氏)다.”고 하였다. 문성공은 고려 고종·원종 ·충렬 ·충선왕조에 즈음하여 그의 사업은 많은 기록에 나타나 있고 또한 장단에 있는 묘갈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임금 7년 봄 안씨 자손들이 정려를 세워 선생의 옛 고향임을 표시하니 이는 안씨의 자손만이 서로 고하고 나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 백대의 훗날이라도 이 정려를 지나는 길손은 선생의 남기신 교화를 잊지 말고 공경할 줄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에 명을 짓는다. 정려의 비석으로 크게 밝은 분을 흠모하되 엄하신 듯 신령하신 듯 하며, 제단을 마련하여 그 시초를 미루어서 경건히 제사 드린다.
향여단비 (鄕閭壇碑)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181 향여단비는 조선 효종(孝宗) 7년(1656)에 세운 것으로 고려시대의 명 신이며 학자인 회헌 안유(晦軒安裕)의 고향을 기념하기 위한 향여비 이다. 안상이 있는 방형 대석위에 폭 63cm, 두께 20cm의 비신이 있 는데 전면에는 ""고려선현 문성공 회헌 안선생 향여비(高麗先賢文成公晦軒安先生鄕閭碑)""라 새겨져 있고 높이는 2.3m이다. 이곳에는 이 외에도 순흥 안씨의 석비 13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