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알기
ㆍ작성자 안성규
ㆍ작성일 2016-12-26 (월)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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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11호-회헌영정(晦軒影幀)
국보 111호-회헌영정(晦軒影幀)
 
 
종   목  국보   111호
명   칭  회헌영정
  (晦軒影幀)
분   류  초상화
수   량  1폭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소수서원
시   대  고려 충숙왕
소유자  소수서원
관리자  소수서원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화면은 상하로 2등분되어 위에는 글이 쓰여 있고 아래에는 선생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쪽을 바라보며 붉은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옷주름은 선을 이용하여 명암없이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선생의 강직한 인상이 보인다.

소수서원에 있는 이 초상화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2년 후인 고려 충숙왕 5년(1318)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함께 모실 때, 1본을 더 옮겨 그려 향교에 모셨다가 조선 중기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이 됨)을 건립하면서 이곳에 옮겨놓은 것이다. 선생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회헌영정

문화재명  회헌영정(晦軒影幀)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은 고려(高麗) 후대(後代)의 명신, 학자로서 충렬왕대(忠烈王代)에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擧)가 되어 왕(王)과 공주(公主)에 호종(扈從)하여 원조(元朝)에 들어갔을 때에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筆寫)하여 주자학연구(朱子學硏究)를 시작하여 후에 경사교수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로 임명되어 유학을 크게 진흥하여 한국(韓國) 주자학(朱子學)의 원조가 되었다.

그의 영정은 익재(益齋)의 영정보다 1년 앞선 연우(延祐) 5년(1318)-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5년-에 왕명(王命)에 의하여 모사(摹寫)된 것이며, 반신상(半身像)인 점이 다를 뿐 역시 고고유사묘(高古遊사描)의 화법으로 30도 각도의 좌측상(左側像)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사자(嗣子) 안우우(安于瑀) 찬기(贊記)가 있으므로 유래가 확실하여 고려의 초상화로서 쌍벽(雙璧)을 이루고 있다.

현재 풍기(풍基)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조선(朝鮮) 중종(中宗) 37년(1542)에 풍기군수(풍基郡守) 주세붕(周世鵬)에 의하여 안향(安珦)이 소시(小時)에 독서한 숙수사(宿水寺)의 기지(基址)인 백운동에 사당을 세워서 안향(安珦)의 장학(奬學)의 유풍(遺風)을 흔모(欣慕)케 하였으며 동(同) 38년에는 회헌묘전(晦軒廟前)에 서원을 세워서 유생수학의 도장을 마련하였다. 이후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건의에 의하여 소수서원사호(紹修書院賜號), 사액(賜額)으로서 서원(書院)의 효시(嚆矢)를 이루었다.

안향(安珦)의 영정(影幀)은 순흥향교(順興鄕校)에 안치(安置)하여 내려오다가 세조3년정축(世祖三年丁丑) 이보흠(李甫欽)등의 모란(謀亂)에 의하여 부(府)가 폐지(廢止)된 후로는 한양(漢陽)의 안씨종가(安氏宗家)에 이안(移安)되었는데 종손(宗孫) 전주서(前注書) 안정(安珽)이 입묘(立廟)를 듣고 이것을 여기에 이안한 것이다.





示喩史抄前雖承敎考
察多勞未敢煩稟委此
垂問多荷但本冊曾於崔
侍郞處偶蒙借許沈辛
矣敢附己見辛細閱數三再
見敎爲望不具

*해설*
말씀으로서 사초는 앞에비록 가르침을 받았으나
고찰함에 로 가많아거 감히 번거롭게 품신하지 못하여
다시 묻는것을 위탁 하니 미안하노라
일즉 최시랑 곳에서 우연이 보게되어
빌려받게되니 다행한일이라.감이 내의견을 부쳐보니
상세히 여러번 열람하여다시 보고 가르침을 바라노라
 
 
 


 
 


 

 


 
 
 width=회헌영정(초상화)

 
위     치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위치설명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위치하고 있다.
문화재 지정 : 국보 제111호 (1962. 12. 20)
시대구분 : 고려시대 (1318년)
형태/방법/업적 : 낡은 화폭이지만 안모에서 기품이 우러나오며 단아 장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상은 화면을 상하로 그분하여 상부공간에는 선문을 쓰고 하반부에만 인물상을 배치하였는데 흉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이다. 홍포를 입고 검은색 복두를 쓴 재 머리를 그린 것이다. 그림 상단에 안향의 아들 안우기의 제찬이 있어 제작 연유를 밝혀준다. 필법은 부드럽고 엷은 주선으로 안면 윤곽을 그리고 구륵처리는 얼굴의 이목구비에만 한정시키고 있다. 옷주름은 같은 굵기의 선으로 음영의 삽입없이 간략히 처리하였다.안향상은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초상화 중 최고이다. 불교식 이나 유교식의 그림 방식이 아닌 사선과 수평을 이루는 각도에서 보고 그렸고 곤충에서 뽑은 물감으로 그렸는데 색깔이 변하지 않아 귀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영주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1999, 문화유적분포지도, p.258
영주시, 영풍군, 1983, 우리고장의 전통문화, p.508
순흥면, 1994, 순흥향토지, p.260-264
 
회헌 안향 (1243∼1306)은
고려후기의 명신학자로서 충열왕대에 원나라에 들어가서 주자학을 연구하였고 후에 경상교수 도 감사로 임명되어 유학을 크게 진흥시켜 우리나라 주자학의 원조가 되었다. 회헌영정은 찬문의 내용에 의하면 안향이 죽은지 12년 두인 충숙왕 5년 (1318) 왕명에 의하여 문묘에 배향하고 고향인 홍주에 치제할 것을 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당시 왕명으로 공자의 묘정에 형상을 봉안할 때 홍주수였던 최림이 도목에 의하여 1본을 더 모사하여 향교에 봉안했다. 원래 순흥향교에 안치되어 내려오다가 세조 3년 (1457)에 이보흠등의 모란에 의하여 순흥부가 폐부된 후로는 한양의 안씨 종가에 이안되었는데 종손 전주 서안정이 입묘를 듣고 영정을 소수서원으로 이안한 것이다. 안향상은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초상화 중 최고의 초상화로서 주목할 만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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